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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생(濟生)


1절
상제께서 환자를 대하실 때에 환자의 가슴과 배 속을 들여다보시는 듯이 경락(經絡)과 장부(臟腑)를 낱낱이 가리키시며 이곳은 어디이고 저곳은 어디이며 어느 장부에서 병이 났고 또 누릿누릿하게 장부에 끼어 있는 것이 담이라 하시며 하나하나 환자가 알도록 가르쳐 주셨도다.

2절
상제께서 처음으로 의법(醫法)을 화정동(花亭洞)에서 베푸셨도다. 이 경오(李京五)는 화정동에 사는 사람이라. 어느 날 그와 친분이 있는 박 금곡이란 대원사(大院寺) 주지가 경오의 신병을 아뢰고 심방을 상제께 간청하므로 상제께서 그의 병세를 보시니라. 왼쪽 발가락이 저리고 쑤시며 오후부터 새벽까지 다리가 부어 기둥과 같이 되는지라. 그러나 그 부기가 아침에는 내렸다가 정오경에 원상대로 회복되다가도 오후에 붓기 시작하느니라. 이 증세가 三ㆍ四년 계속되어 이제 촌보를 옮기지 못하고 앉은뱅이 노릇을 하게 되었도다. 상제께서 진맥하시기를 「진실로 괴상한 병세로다. 모든 일이 작은 일로부터 큰 일을 헤아리나니라. 내가 이 병으로 표준을 삼고 천하의 병을 다스리는 시험을 하리라.」 상제께서 손수 다리 끝까지 만지고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서 씻으라」 이르시니라. 경오가 명하신 대로 하니 곧 나으니라.

3절
상제께서 전주 능소(陵所)에 가 계실 때 황 응종(黃應鍾)이 본댁으로부터 와서 상제의 부친의 병보를 아뢰므로 상제께서 응종에게 술과 돈 열 냥을 주시며 「해가 저물었으나 불쾌히 생각지 말고 곧 돌아가다가 청도원(淸道院) 김 송환(金松煥)의 집에서 자고 내일 이른 아침에 동곡 김 갑칠에게 가서 나의 모시 두루마기 한 벌을 가지고, 가서 부친에게 입혀 드리고 이 돈으로 영양분 있는 음식을 만들어 공양하라」고 이르셨도다. 응종이 날은 저물었으나 감히 명을 거역치 못하고 능소를 떠나 행길에 나온 지 한 시간도 못 되어 길옆에 돌비석이 보이는지라. 청도원에 이른 것이니라. 능소로부터 六十리나 되는 청도원을 한 시간도 못 되게 당도한 것에 놀라고 이것은 반드시 상제의 도력임을 깨닫고 기뻐하였도다. 김 송환의 집에서 자고 이튿날 이른 아침 동곡에 들러 두루마기를 찾아 가지고 객망리에 가서 상제의 부친에게 입혀 드리니 부친이 곧 정신을 회복하고 영양분 있는 음식 대접을 받으니 몸도 완쾌하였도다.

4절
임인년에 상제께서 전주와 하운동(夏雲洞) 사이를 다니시면서 약재를 쓰지 않고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을 건져 주시니 모든 사람들은 그 신력에 경복하였도다.

5절
상제께서 임인년 四월 十三일에 김 형렬의 집에 이르셨도다. 때마침 형렬의 아내가 막내아들을 분만할 때니라. 그 부인은 산후 四十九일간 산후 복통으로 고생하는 습관이 있는지라. 형렬이 매우 근심하기에 상제께서 가라사대 「이후부터 나를 믿고 근심을 놓으라」 하시니 그는 상제의 도움을 믿고 근심을 놓았도다. 이로부터 부인은 복통과 천식의 괴로움에서 벗어났도다.

6절
장 효순은 지병인 횟배앓이로 생명을 잃게 된 시집간 딸 때문에 전주부에 머물고 계시는 상제를 찾아와서 고쳐주시기를 간청하였느니라. 상제께서 그 집에 이르러 그 두 부부를 불러 벽을 사이에 두고 등지고 서게 하여 부인 병이 남편에 옮아가게 하신 후에 상제께서 남편의 배를 만져 회복하게 하시니라.

7절
김 윤근이 치질로 수십 년 동안 고생하다가 계묘년 三월에 이르러 기동할 수 없이 누울 정도로 심해지니라. 이를 긍휼히 여기사 상제께서 그로 하여금 아침마다 시천주를 일곱 번씩 외우게 하셨도다. 그가 그대로 행하더니 병에 차도가 있어 얼마 후에 완쾌되었도다. .

8절
고부(古阜) 사람 이 도삼이란 자가 간질병이 있었느니라. 그자의 청을 받으시고 상제께서 「나를 따르라」 이르시고 눕혀놓고 자지 못하게 하시니라. 그자가 밥을 먹고 난 후에 배가 아프고 변에 담이 섞여 나오다가 열나흘 만에 간질 기운이 사라졌도다.

9절
상제께서 동곡에 머무실 때 그 동리의 주막집 주인 김 사명(金士明)은 그의 아들 성옥(成玉)이 급병으로 죽은 것을 한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도저히 살 가망이 보이지 않자 아이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업고 동곡 약방으로 찾아왔도다. 상제께서 미리 아시고 「약방의 운이 비색하여 죽은 자를 업고 오는도다」고 말씀하시니라. 성옥의 모는 시체를 상제 앞에 눕히고 눈물을 흘리면서 살려주시기를 애원하므로 상제께서 웃으시며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눕히고 배를 밀어 내리시며 허공을 향하여 「미수(眉叟)를 시켜 우암(尤菴)을 불러라」고 외치고 침을 흘려 죽은 아이의 입에 넣어 주시니 그 아이는 곧 항문으로부터 시추물을 쏟고 소리를 치며 깨어나니라. 그리고 그 아이는 미음을 받아 마시고 나서 걸어서 제 집으로 돌아가니라.

10절
김 창여(金昌汝)가 동곡에서 살았는데 여러 해 동안 체증으로 고생하던 중 어느 날 상제를 찾아 자기 병을 보아주시기를 애원하니라. 상제께서 그를 평상 위에 눕히고 배를 만지면서 형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글을 읽게 하였더니 창여(昌汝)는 체증으로부터 제생되었도다.
 調來天下八字曲 淚流人間三月雨
 葵花細忱能補袞 萍水浮踵頻泣玦
 一年明月壬戌秋 萬里雲迷太乙宮
 淸音鮫舞二客簫 往劫烏飛三國塵

11절
용두치에 교자를 타고 다니는 김 모란 앉은뱅이가 살고 있었도다. 그가 하루 상제를 찾아뵈옵고 편히 걸어 다니게 하여 주시기를 애원하니라. 상제께서 그를 앞에 앉히고 담뱃대에 따라 일어서라고 이르고 그가 담뱃대가 높아짐에 따라 점점 높이 일어서려고 애를 쓰게 하시고 형렬에게 「예고신 예팽신 석란신 동서남북 중앙신장 조화조화 운오명령훔(曳鼓神曳彭神石蘭神東西南北中央神將造化造化云吾命令吽)」을 읽게 하시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다시 그를 뜰에 세우고 걷게 하시며 광찬으로 하여금 그의 종아리를 쳐서 빨리 걷게 하시니라. 그는 교자를 버리고 걸어서 돌아갔도다. 그 후에 그는 걷게 된 인사로 상제께 三十냥을 공양하니 상제께서 그것으로 행인들에게 주식을 베풀어 주시고 그 사람은 행인들 앞에서 상제께서 다리를 펴주셨다고 고마운 인사를 하니라.

12절
박 순여(朴順汝)는 어머니를 모시고 동곡에서 살아 왔는데 모친이 나이 육순으로서 병이 도를 넘었으므로 식구들이 치상의 준비를 하니라. 이 소식을 전하여 들으시고 상제께서 그 집을 찾아가시니라. 그곳에 이르셔서 순여에게 시장에 나가 초종지례에 쓰는 제주를 쓰지 않도록 하여 주십소사 하고 지성껏 심고(心告)하고 돌아오게 하시고, 사물탕 한 첩을 달여서 병실의 바깥뜰로부터 열두 걸음이 되는 곳에 광중과 같이 땅을 파서 그 첩약을 묻고 「오래된 병이니 약을 땅에 써야 하리라」 말씀하시고 돌아오는 순여에게 「누구에게 심고하였느뇨」고 물으시니라. 순여가 「선생님께 심고하였나이다」고 대답하기에 상제께서 웃으시고 그에게 빚어 넣은 술을 가져와서 이웃 사람들과 함께 모두들 마시게 하시니라. 병자는 곧 회생하였도다.

13절
전 순일(田順一)은 동곡의 주막 주인인데 오랫동안 신병으로 고생한 끝에 상제께 치료를 청하여 오므로 이에 이기지 못하여 한 공숙을 데리고 병자의 집에서 병을 보셨도다. 상제께서 병자에게 죽 한 그릇을 먹이고 공숙에게 주머니 속에 있는 은행 한 개를 방안에 있는 거울 조각 위에 얹어 으슥한 곳에 두게 하시고 병자에게 술 한 상을 청하셨도다. 十여 분 지나서 상제께서 「의원이 떠나니 병자는 문밖에 나와 전송하라」 이르시니 순일이 가까스로 일어나 전송하였더니 그 후 곧 완쾌하였도다. 그 뒤에 순일이 상제를 공양하지 않기에 상제께서 「이 사람은 입맛을 잃고 신고하리라」 말씀하셨는데 이후 몇 달 동안 순일은 병상에서 일어났으나 입맛을 잃고 고통을 받았도다.

14절
동곡 김 갑진(金甲辰)은 문둥병으로 얼굴이 붓고 눈섭이 빠지므로 어느 날 상제를 찾고 치병을 청원하였도다. 상제께서 갑진을 문 바깥에서 방쪽을 향하여 서게 하고 형렬과 그 외 몇 사람에게 대학 우경일장을 읽게 하시니라. 十여 분 지나서 갑진을 돌려보내셨도다. 이때부터 몸이 상쾌하여 지더니 얼마 후에 부기가 내리고 병이 멎었도다.

15절
김 광찬은 상제를 모시고 김 성화가 있는 고을 임피 군둔리(臨陂軍屯里)에 이르러 며칠 동안 머물렀도다. 상제께서 죽게 된 성화의 이웃 사람을 제생하셨느니라. 상제께서 환자를 만나 그 병은 그대로 치료하기 어려우니 함열(咸悅) 숭림사(崇林寺) 노승을 조문하고 돌아오게 하셨도다. 환자는 중병의 몸을 이끌고 그곳을 돌아옴으로써 사경에서 벗어났도다. 그가 이튿날 다시 숭림사에 찾아가니 노승이 죽었는지라. 조문하고 돌아오면서도 상제 말씀에 위력을 느끼고 두려워하였도다.

16절
상제께서 을사(乙巳)년 정월 그믐날에 형렬과 함께 부안군 성근리(扶安郡成根里) 이 환구(李桓九)의 집에서 여러 날을 머물고 계셨는데 환구가 부안 사람 신 원일(辛元一)을 자주 천거하기에 상제께서 그를 부르니 원일이 와서 배알하고 상제를 자기 집에 모시고 공양하니라. 그의 아버지와 아우가 상제의 장기 체류를 싫어하므로 원일이 상제께 「가친이 본래 해마다 어업을 경영하다가 작년에 폭풍 때문에 큰 손해를 보았으니 선생님께서 금년에는 풍재를 없게 하여 주시면 가친을 위하여 행이 되겠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풍재를 없게 하고 어업을 흥왕케 하리니 많은 이익을 얻으면 후에 돈 千냥을 가져오라」 이르시니라. 원일의 부자가 기뻐하여 승낙하니라. 과연 말씀대로 그해에 풍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칠산 바다의 어업 중에서 원일의 아버지가 가장 흥왕하였도다.

17절
상제께서 원일의 아버지에게 사람을 보내어 돈 千냥을 가져오게 하시니 원일의 아버지는 전약을 어기고 보내지 않는지라. 상제께서 원일에게 가라사대 「이것은 대인에 대한 기만이니라. 나의 일은 일동이라도 사사롭게 못하나니 이제부터는 그대 집의 어업이 철폐케 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이 말씀이 계신 후부터 고기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아 그의 부친은 마침내 어업을 폐지하였도다.

18절
이 일이 있은 며칠 후에 상제께서 원일의 집에 가셨는데 때마침 원일의 부친이 서울 채권자로부터 변제의 독촉에 시달리는지라. 상제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사 원일의 부친을 대신하여 채권자에게 「우리 두 사람이 오늘 일기를 알아맞추어 탕감의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하시니 그도 쾌히 허락하니라. 상제께서 「만일 그대가 비가 온다고 하면 나는 안 온다 할 것이요 또 비가 안 온다고 그대가 말하면 나는 온다고 할 것이니 먼저 말하라」 하시니라. 그날은 유난히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인지라. 그 채권자가 비가 오지 않는다고 말하기에 상제께서는 「반드시 비가 오리라」고 하시니라. 조금 지나서 비가 내리니 그자는 할 수 없이 빚을 탕감하고 돌아가니라. 그 비는 상제께서 내리게 하신 것으로 세상 사람들이 믿었도다.

19절
전주부 사람 문 태윤이 상제를 배알하니라. 상제께서 「네가 갖고 있는 보따리를 끌러 보이라」 이르시니 그자가 주춤하자 「소란 때문에 수상한 자를 근방에서는 재우지 않느니라」고 말씀을 이으시니 그제서야 그자가 풀어 보이는도다. 그것은 그자와 숙질 간의 금전 소송 서류였도다. 태윤은 상제께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므로 선생님께 그 해결 방법을 얻고자 방문한 까닭을 아뢰니라. 상제께서 글을 써서 봉하여 주시며 이것을 조카 집 문 앞에서 불사르라고 방법을 가르쳐 주셨도다. 태윤이 명을 좇으니라. 그 후에 듣자니 숙질 간의 불화가 가셨다 하니라.

20절
상제께서 명하신 대로 六十四괘를 암송하고 갑자기 각통으로 생긴 오한 두통을 즉각에 고쳤느니라. 형렬이 이상히 여겨 그 연유를 여쭈었더니 상제께서 「八괘 가운데 오행이 감추어 있으니 오행의 기운을 응하게 한 것이 곧 약이 되었느니라」고 알려 주시니라.

21절
김 갑칠의 형수가 발바닥의 종창으로 죽을 고생을 당하고 있는지라. 상제께서 소식을 들으시고 「그 환부가 용천혈(龍泉穴)이니 살기 어려우리라. 준상(俊相)과 갑칠은 오늘 밤 서로 번갈아 환자를 잠에 들지 못하게 하면서 밤을 새우라. 명부사자와 나의 사자 중 누가 강한가 보리라」고 말씀하셨도다. 두 사람은 명을 좇았으나 환자는 한때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정신이 혼몽하고 위독하여지다가 날이 밝으니 차차 정신을 차리는지라. 그제서야 상제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근심을 놓게 하시고 쌀뜨물을 환부에 바르고 百냥이 있어야 되겠다고 하시면서 돈을 청하셨도다. 준상이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가옥을 방매하여야 되겠나이다」고 여쭈어 난색을 보이므로 상제께서 그의 집을 상제께 팔게 하시니 준상이 기꺼이 승낙하기에 상제께서 그로부터 가옥 매도 문서를 받아 가지고 계시다가 잠시 후에 그것을 불사르고 준상을 그 집에서 눌러 살게 하고 방 한 간을 빌려서 수리하여 약방으로 쓰셨도다.

22절
상제께서 덕찬을 동행케 하여 김 낙범의 집에 가셔서 그의 아들 석(碩)을 사랑으로 업어 내다가 엎드려 놓고 발로 허리를 밟으며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손을 붙들어 일으켜 걸려서 안으로 들여보내면서 닭 한 마리를 삶아서 먹이라고 일러 주시니라. 이로부터 석의 폐병이 나았도다.

23절
이 무렵에 괴질이 청주(淸州)와 나주(羅州)에 창궐하여 인심이 흉흉한지라. 상제께서 「남북으로 마주 터지니 장차 무수한 생명이 잔멸하리로다」고 말씀하시고 글을 써서 괴질신장에게 「호불범 제왕 장상지가 범차 무고 창생지가호(胡不犯帝王將相之家 犯此無辜蒼生之家乎)」라 칙령하시고 「내가 이것을 대속하리라」고 말씀하시니라. 상제께서 형렬에게 새 옷 다섯 벌을 급히 지어 오게 하시니라. 가져온 옷으로 상제께서 설사하시면서 다섯 번 갈아입고 「약한 자는 다 죽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이후부터 그 괴질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없어졌도다.

24절
정 태문(鄭泰文)이 정미년에 용암리에 살고 있는 김 사유(金士有)의 물방앗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태문이 상제와 함께 여러 날 한 방에서 지낼 영광스러운 기회를 가졌도다. 그 시절에 태문이 토질로 신고하여 고쳐주시기를 청하니 상제께서 허락만 하시고 고쳐주지 아니 하시더니 어느 날 태문에게 「네가 병을 고치려 하느뇨」 물으시기에 태문이 소원임을 아뢰니 상제께서 「내가 이틀 후에 정읍으로 가리니 이제 고쳐주리라」 말씀하시고 글을 써 주시면서 「이 글을 네 침실의 베개 위에 두고 자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라. 그러면 개가 방문을 향하여 두 앞발을 모으고 혈담을 토하리라. 곧 네 병을 개에게 옮겼느니라」 이르셨도다. 태문은 이르신 대로 결과가 나타난 것에 새삼 경탄하니라. 태문이 상제를 술집에 모시고 술을 올리니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술을 마시고 술값을 바로 갚지 않으면 먹지 아니함만 못하니라.」 태문이 「내일 틀림없이 갚으려 하나이다」고 여쭈니라. 술값은 일곱 냥이었도다. 이튿날 상제께서 정읍으로 떠나신 뒤에 태문이 술값을 천천히 치르려고 생각하더니 별안간 복통을 일으키는지라. 그제서야 마음을 돌리고 꼭 갚으리라 결심하니라. 복통도 가라앉아 술값을 바로 갚았도다.

25절
상제께서 두루 다니시다가 동곡 약방에 들러 그곳에 계셨도다. 그 동리에 평양집이 있었는데 이 집의 다섯 살 난 아들이 갑자기 앉은뱅이가 되었기 때문에 그 주인이 병을 보아달라고 상제를 찾아오니 상제께서 「아이에게 쇠고기와 참기름을 먹여서 내일 아침에 안고 오너라」고 이르시니라. 평양집이 가난하여 참기름만 먹이고 아이를 안고 와서 아뢰니 상제께서 아무 말씀 없이 누우시는도다. 주인이 화가 나서 「차라리 죽어라」 하면서 아이를 마구 때리니 아들이 하도 아프기에 울면서 도망치려고 일어서는지라. 그제서야 평양집이 깨닫고 매우 기뻐하면서 상제께 감사드리며 사과를 드렸더니 상제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도다.

26절
박 순여가 왼쪽 다리에 부종이 생겨 다리가 큰 기둥과 같이 부어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므로 상제께 간청하니라. 상제께서 자현에게 「순여의 병을 다스려 살게 함이 옳으냐. 또는 그대로 두어 죽게 함이 옳으냐. 네 말 한 마디에 달렸느니라」고 물으시기에 자현이 조금 주저하다가 「살려주심이 옳을까 하나이다」고 대답하니 가라사대 「박 순여는 불량한 사람이니라. 너에게 매우 무례하였으니 너와 함께 가서 치료하리라」 하시고 자현을 앞세우고 순여의 집에 가시니라. 상제께서 손수 부운 다리를 주물러 내리시며 백탕 한 그릇을 마시게 하시는도다. 원래 순여는 나이가 자현보다 많다 하여 항상 자현을 무례하게 대하여 왔느니라. 자현은 입 밖에 내지 않으나 속으로 불쾌하게 여기고 있기에 상제께서 이것을 아시고 자현에게 물으신 것이었도다. 순여는 그 후에 부기가 내려 걸어 다니게 되었도다.

27절
차 경석의 소실이 바늘에 손가락이 찔린 것이 팔까지 쑤시다가 마침내 반신불수가 된 것을 상제께서 육십간지를 써서 주시고 그녀의 상한 손가락으로 한 자씩 힘있게 짚어 내려가며 읽게 하고 다시 술잔을 들고 거닐게 하시니라. 이로부터 혈기가 유통하여 곧 완쾌하였도다.

28절
김 경학의 여덟 살 난 아들이 병들어 여러 날 일어나지 못하거늘 상제께서 병실에 들어가 보시고 「일어나지 않으니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 빨리 일어나라」 하시니 곧 병이 나았도다.

29절
그 후 또 김 경학이 병들어 매우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상제께서 경학에게 명하시어 사물탕(四物湯)을 끓여 땅에 묻고 달빛을 우러러보게 하시더니 반 시간 만에 병이 완쾌하였도다.

30절
十八ㆍ九세 된 소년이 광산에서 일하다가 큰 돌에 맞아 다리가 부러지고 힘줄이 끊어지면서 다리를 펴지 못하고 몸도 자유롭게 굽히지 못하는지라. 그 소년이 상제께서 전주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고쳐주시기를 간청하므로 상제께서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내 눈에서는 피가 흐르느니라. 위로 뛰어 보라」 이르시니 그 소년이 힘주어 몸을 세우면서 위로 뛰니 오그라졌던 다리가 펴지니라. 이것은 혈맥과 뼈에 충동을 주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31절
장 성원(張成遠)은 대흥리에 살면서 주막을 업으로 삼는 자인데 그의 아기가 낮에 잘 있다가도 밤이 되면 신열과 해소로 잠을 자지 못하고 몇 달을 보냈도다. 성원이 아기를 안고서 상제를 뵙고 치료를 애원하니라. 상제께서 불쌍히 여겨 아기를 보시고 성원에게 「비별(飛鼈)이니 낮이면 나와 놀고 밤이면 들어와 자니라. 불가불 다른 곳으로 옮겨야 나을 것인바 산으로 옮기려 하나 금수도 또한 생명이요 바다로 옮기려 하나 어류도 또한 생명이니 부득이 전선으로 옮겨야 하리라. 전선 두어 자를 구하여 와서 그것을 앓는 아기의 머리 위에 놓았다가 전주 밑에 버리라」고 이르시니라. 성원이 명하신 대로 시행하니 아기는 밤에 잠자기 시작하고 얼마 후에 신열과 해솟병에서 제생되었도다.

32절
상제께서 어느 날 종도들과 함께 가시다가 한 주막에 들어가셨도다. 상제께서 그 집 주인을 보시더니 「저 사람이 창증으로 몹시 고생하고 있으니 저 병을 보아주라」고 종도들에게 이르시고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신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在明明德 在新民在止於至善)」을 읽히시니라. 집 주인은 물을 아래로 쏟더니 부기가 빠지는도다. 상제께서 웃으시며 「너희들의 재조가 묘하도다」고 말씀하시고 다시 길에 오르셨도다.

33절
김 낙범은 천포창으로 몹시 고통을 받으면서도 상제께서 용두리에 계시는 동안 지성을 다하였도다. 상제께서 어느 날 김 준찬과 김 덕찬과 함께 계실 때 낙범을 꾸짖으셨도다. 「네가 어찌 그렇게 태만하느뇨.」 낙범이 무슨 영문인지 분간치 못하여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하니 더욱 꾸짖으시니라. 「네가 어른이 꾸짖는데 어디로 가려 하느뇨.」 낙범은 더욱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다시 쪼그리고 앉아 꾸중만을 들으면서 땀만 흘리고 있노라니 한참 지난 뒤에 허락이 있어서 집에 돌아왔도다. 그는 꾸지람을 들을 허물을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깨닫지 못하여 송구스럽게만 여기면서 나날을 지냈도다. 그 후 천포창이 점점 나아서 그 병으로부터 제생되었도다. 그제서야 비로소 상제의 진노 견책하심이 약임을 깨달았도다.

34절
또 상제께서 김 낙범의 아들 영조(永祚)가 눈에 핏발이 생겨 눈을 덮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 안질을 자신의 눈에 옮겨 놓으시고 그의 아들의 안질을 고치셨도다.

35절
상제께서 공신(公信)의 독조사 도수를 말씀하신 후에 동곡(銅谷)으로 가셨도다. 공신(公信)은 고부(古阜) 옥에서 얻은 신병이 도져 집안 출입도 제대로 못하여 응종을 동곡에 계시는 상제께로 보내어 아뢰게 하였으되 좀 기다리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도다. 공신은 불끈 화가 나서 아무 약도 쓰지 않고 드러누웠노라니 병은 점점 무거워지고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는지라. 응종이 민망히 여겨 구릿골에 가서 상제를 뵈오니 상제께서 공신의 병세를 묻는도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나이다」고 응종이 대답하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그를 죽게 하여서야 되겠느냐. 찹쌀 아홉 되로 밥을 지어 먹이라」고 이르시니라. 응종이 돌아가서 그대로 전하니라. 공신은 그대로 믿고 행하였던바 병에 큰 차도를 보아 병석에서 일어났도다.

36절
상제께서 어느 때 공신의 집에 계신 일이 있었도다. 그때에 공신의 모친이 요통으로 고생하고 있음을 상제께서 들으시고 매실 한 냥쭝을 종이에 싸서 들보에 매어달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곧 제생되었도다.

37절
상제께서 이질로 고통하는 사람에게 사물탕(四物湯) 본방에 목과(木果) 세 돈을 넣어 약으로 주셨는데 대체로 그 탕을 즐겨 쓰셨도다.

38절
상제께서 부안 사람이 감주를 올리기에 「이것은 구천 하감주라. 어찌 도적 음식을 받으리오」라고 하셨도다. 시좌하고 있던 종도들이 그에게 사유를 물으니 그 사람이 아내 몰래 가져왔다고 알리는도다.

39절
어느 해 여름 천원(川原)에 계실 때 참외를 올리는 자가 있었으나 상제께서 잡수시지 않고 그대로 두셨는데 공우가 사사로이 한 개를 먹었더니 갑자기 설사가 나고 낫지 않느니라. 할 수 없이 상제께 사유를 고하니 가라사대 「그 아내가 주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가져왔으므로 살기가 붙어 있었는데 그 살기에 맞았도다」 하시고 「닭국을 먹어라」 하시기에 공우가 명하신 대로 하였더니 곧 설사가 나았도다.

40절
하루는 형렬의 딸이 병들어 앓는다는 말을 들으시고 문밖에 나가서 휘파람을 세 번 부신 뒤에 만수(萬修)를 세 번 부르시니 맑은 하늘에 문득 지미 같은 것이 가득히 끼어 지척을 분별키 어려워지니라. 상제께서 「이런 것이 있어서 사람을 많이 병들게 한다」 하시고 공중을 향하여 한 번 입 기운을 풍기시니 그 지미 같은 것이 입 바람에 몰려 올라가서 푸른 하늘이 트이고 곧 바람이 일어나서 지미를 흩어버리니 하늘이 다시 맑아지니라. 이로부터 형렬의 딸은 병이 나았도다.

41절
어느 날 고부인은 모친이 단독을 앓는다는 기별을 듣고 근친하려고 하니 상제께서 좀 기다려서 함께 가자고 하시기에 마음 속으로 기뻐하여 기다리니라. 그러던 중에 모친이 아랫방에 들어오니라. 상제께서 「왕대 뿌리에 왕대 나고 시누대 뿌리에 시누대 나나니 딸이 잘 되도록 축수하라」고 부탁하시니 이로부터 단독이 곧 나았도다.

42절
상제께서 이 직부의 집에 가 계셨을 때에 그가 굳이 자기 부친의 당년 신수를 논평하시기를 청하므로 상제께서 부득이 백지 한 장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다시 다른 종이에 글을 써서 「급한 일이 있거든 뜯어보아라」고 이르시고 봉하여 주셨도다. 그의 부친은 그것을 깊이 간수하였다가 얼마 후에 그의 자부가 난산으로 위경에 빠져 있음을 듣고 그 봉서를 가지고 갔더니 벌써 순산하였으므로 그는 그 봉서를 다시 잘 간수하였도다. 연말에 치안이 병들어 매우 위독하게 되자 아들 직부가 그 봉서를 열어보니 「소시호탕(小柴胡湯) 두 첩」이라 쓰여 있었도다. 그 약으로 치안은 바로 쾌유하였도다.

43절
상제께서 전주 이 치안의 집에 「고견 원려 왈지(高見遠慮曰智)」의 글을 써 놓으셨도다.
 智者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每事 任意用之 謂之智慧勇力
 大智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其次 與日月同 有弦望晦朔之理
 又其次 與鬼神同 有吉凶禍福之道
 萬事起於陰 以布陽 先察陰晦 以觀陽明 每事先觀始發處
 陰起事而陽明 陽起事而陰匿 要須先察陰陽 陰陽則水火而已
 日用事物起居動靜 在於耳目口鼻聰明道理 耳屬水 目屬火 明白然後萬事可知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其用可知然後 方可謂神人也
 陰殺陽生 陽殺陰生 生殺之道 在於陰陽 人可用陰陽然後 方可謂人生也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不測變化之術 都在於神明 感通神明然後 事其事則謂之大仁大義也
 事有決斷然後 有變化之道也
 春夏秋冬秋爲義 義則決斷也
 六用三德 三德則天德地德人德也 統合謂之大德也
 德義有生殺之權 生殺則陰陽 知此兩端而已
 天用地用 人用之 調理綱紀 統制乾坤 此之謂造化手段也
 理雖高 出於太極无極之表 不離乎日用事物之間
 年月日時分刻輪廻 皆是元亨利貞天地之道也
 天地之用 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葬而已
 養則收藏處 藏則出用處 觀其收藏出用之物 以致出也
 人而用之之道 捨此而何以也
 入而養中 出而形外 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自然心自開也

44절
김 광찬은 상제께서 의복을 갈아입게 되었음을 눈치 채고 미리 의복 한 벌을 지어 두었다가 올렸더니 상제께서 그 의복의 바느질의 정묘함을 칭송하시니라. 광찬이 「옷을 지은 여자는 침선과 모든 범절이 훌륭하나 앉은뱅이라 신세가 가긍하나이다」고 여인의 신세를 아뢰니 상제께서 긍측하게 여기사 「나와 함께 한번 가자」고 하시더니 광찬을 앞세우고 두어 차례 찾아가 보시고 별다른 치료는 베푸시지 아니하셨으나 그 여인은 스스로 힘을 얻어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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